장수청 미국 퍼듀대학교 교수/ CHRIBA 연구소 소장
- 결제·교통앱 사용 어렵고 구글맵 도보 길찾기 제한 외국인 관광객 불편 커
- 韓, 디지털 문턱 낮추면 관광객 늘고 경제 활성화
얼마 전 서울 방문 당시 아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카카오택시 앱을 이용하려 했으나 20분간 허둥대다 결국 실패하는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앱을 실행했더니 해외 결제로 인식돼 호출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같은 불편은 필자만 경험한 게 아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겪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많은 한국인은 ‘설마’라는 반응을 보이며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한국은 분명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이다. 네이버로 길을 찾고, 카카오로 택시를 부르며, 배달의민족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야놀자 앱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촘촘하다. 한국인에게는 편리하고 자랑스러운 일상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이 강점이 오히려 높은 장벽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구글맵은 한국에서 도보 길찾기가 제한되며, 본인 인증은 한국 통신사 전화번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애플페이나 알리페이도 주요 관광지에서 ‘사용 불가’ 문구에 막히는 경우가 많고, 대중교통 앱조차 영어 지원이 부족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신기한 ‘디지털 섬’이다. 한 미국인 동료 교수는 학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후 “파리나 런던에서는 구글맵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여러 앱을 설치해도 길 찾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을 좋아하지만, 디지털 서비스 때문에 여행이 스트레스였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앱이 아니라, 익숙한 글로벌 앱으로 한국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다.
특히 MZ세대 여행객들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단체 패키지 여행보다 개별 여행을 선호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현지 문화를 탐험하고 실시간으로 계획을 변경하며 자유를 만끽한다. 디지털 전환은 이러한 트렌드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들이 평소 애용하는 글로벌 플랫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K-팝과 치맥은 좋았지만, 불편한 디지털 환경 때문에 다시 방문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불편이 누적되면 한국은 매력적인 ‘인스타 감성 여행지’에서 ‘한 번 가보면 충분한 곳’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물론 로컬 플랫폼을 포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로컬 여행 플랫폼은 지역 축제와 연계한 상품이나 현지 맞춤 서비스로 차별화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이 놓치는 한국 고유의 매력을 살리는 데 로컬 플랫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로컬 플랫폼은 부산 해변 축제와 연계한 숙소 패키지를 제공하여 외국인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접근성이다. 개별 기업이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기에는 비용 대비 효율이 낮기 때문에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플랫폼 간 API를 연동해 외국인 관광객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거창한 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디지털 섬’에서 벗어나 세계와 연결하고자 하는 협업 정신이 중요하다. 한국이 진정한 관광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 수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엇지만, ‘관광 입국’을 선언하고 법체계 정비와 디지털 전환에 적극 나선 덕에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 경기 활성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수에서 우리를 현격히 따돌린지 오래다. 지난해 방한 관광객은 1637만 명이었던데 반해 방일 관광객은 3489만 명에 달했다.
디지털 문턱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더 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 강의실에서는 K-팝과 K-드라마에 열광하며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수없이 만난다. 그 열정을 디지털 불편으로 꺾어서는 안 된다. 관광산업이 도약하려면 ‘IT 갈라파고스’에서 벗어나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춘 디지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관광대국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 지금이 그 문을 열어야 할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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